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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의 밤

1938년 · 문명·국가 · 위도 52.51, 경도 13.38

독일에서 '수정의 밤 사건' 일어남.

시점1938년 11월장소나치 독일국가독일국원인암살

수정의 밤(독일어: Kristallnacht)은 나치 독일에서 1938년 11월 9일 밤부터 11월 10일까지 이어진 나치당의 유대인을 향한 포그롬이다. 깨진 유리의 밤, 11월 포그롬 등으로도 불린다. 나치당의 준군사조직인 돌격대와 무장친위대가 주도하였고 일부 독일 시민들과 히틀러 유겐트가 가담하였다. 무뢰배와 다름없는 사적 폭력이 자행되었으나 치안 당국은 아무런 조사도 벌이지 않았다. "수정의 밤"이란 명칭은 이 사건으로 유대인의 가게와 건물, 시나고그들의 유리창이 모두 깨졌기 때문에 이를 돌려말하기 위해 붙여진 것이다.

나치당은 출발부터 외국인과 유대인에 대한 혐오를 선동하며 성장하였다. 1938년 11월 9일 독일 태생의 폴란드 유대인 헤르셀 그린슈판(Herschel Grynszpan)이 파리에서 독일의 외교관 에른스트 폼 라트(Ernst vom Rath)를 암살하자 이에 대한 복수를 핑계로 유대인을 향한 린치가 일어났다.

가택과 병원, 학교를 비롯한 유대인의 건물들은 해머로 부숴졌고 독일 각지와 오스트리아, 주데텐란트에서 267곳의 시나고그가 폭도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7천여 곳 이상의 사업장이 파괴되었고 3만여 명의 유대인이 체포되어 나치 강제 수용소로 보내졌다. 수정의 밤은 1933년 나치 집권 이후 가장 크게 일어난 유대인과 외국인을 향한 폭력이었다. 《타임스》는 1938년 11월 11일 기사에서 "외국인 혐오 선동으로 이와 같이 광범위한 방화와 폭행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어제 무뢰배들이 무방비 상태의 무고한 사람들을 거침없이 폭행한 일은 제 나라의 국격을 실추시키는 일이었다."고 보도하였다.

출처: 위키백과 (CC BY-SA 4.0) · 위키백과 2026-09-19 기준

맥락 한눈에

1938년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1939년), 스페인 내전(1936년), 올림포스산(1938년)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는 바로 앞서 나치 독일(1933년), 뒤이어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1940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주요 사건은 근대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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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기, 다른 지역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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