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사 탐색기전쟁

스탈린그라드 전투

1942년 · 전쟁 · 위도 48.72, 경도 44.53

제2차 세계 대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 제6군 사령관 파울루스의 항복.

기간1942년 8월 23일 ~ 1943년 2월 2일장소볼고그라드국가러시아참여크로아티아 독립국, 헝가리 왕국, 이탈리아 왕국, 루마니아 왕국, 프랑코 정권, 독일국상위 사건동부 전선

스탈린그라드 전투(러시아어: Сталинградская битва, 독일어: Schlacht von Stalingrad, 문화어: 쓰딸린그라드 격전, 1942년 7월 17일 – 1943년 2월 2일)는 제2차 세계 대전 동부 전선에서 벌어진 주요 전투로, 나치 독일과 그 동맹국들이 소련 남부에 위치한 스탈린그라드를 점령하기 위해 소련과 장기간에 걸친 치열한 전투에 돌입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전투는 격렬한 근접전과 민간인에 대한 공중 폭격을 통한 직접적인 공격으로 특징지어졌으며, 시가전의 전형으로 여겨진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군사 역사상 최대 규모이자 가장 피해가 많이 발생한 시가전이었다. 추축국 군대와 소련군 모두 스탈린그라드와 그 주변 지역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이며 막대한 인명 피해를 입었고, 제2차 세계 대전 전체와 인류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격렬한 전투로 평가된다. 이 전투는 유럽 전선에서 전쟁의 전환점으로 널리 인정되며, 독일의 국방군최고사령부(Oberkommando der Wehrmacht)는 동부 전선에서의 손실을 보충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많은 군사력을 철수해야만 했다. 전투가 끝날 무렵, 독일 제6군과 제4기갑군은 파괴되었고 B 집단군은 완전히 무너졌다. 소련군의 승리는 동부 전선의 세력 균형을 소련에 유리하게 바꾸었으며, 붉은 군대의 사기를 크게 끌어올렸다.

소련과 추축국 모두 스탈린그라드를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겼는데 스탈린그라드는 소련의 최대 산업 중심지이자 볼가강의 중요한 교통 허브였기 때문이다. 스탈린그라드를 장악하면 캅카스의 유전지대에 접근할 수 있고 볼가강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었다. 또한, 이 도시는 당시 소련의 지도자였던 이오시프 스탈린의 이름을 딴 만큼 상징적인 의미도 컸다. 전쟁이 진행됨에 따라 독일의 연료 공급은 부족해졌고, 소련 영토 깊숙이 진격해 유전지대를 확보하는 것이 독일의 주요 목표가 되었다. 독일군은 7월 17일 스탈린그라드로 향하는 접근로에서 소련의 스탈린그라드 전선군과 처음 충돌했다. 8월 23일, 제6군과 제4기갑군 일부가 루프트바페의 대규모 공습 지원을 받아 공세를 시작해 도시의 대부분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전투는 곧 건물 하나하나를 두고 벌이는 격렬한 시가전으로 전락했고, 양측은 계속해서 시내로 증원군을 보냈다. 11월 중순까지 독일군은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소련군을 볼가 강 서쪽의 좁은 지대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겨울이 다가오면서 기온은 영하 수십 도까지 떨어져 전투 환경이 더욱 혹독해졌다. 스탈린그라드에서는 치열한 시가전 외에도 참호전이 벌어졌다.

출처: 위키백과 (CC BY-SA 4.0) · 위키백과 2026-08-17 기준

맥락 한눈에

1942년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1939년), 냉전(1945년), 국제 통화 기금(1945년)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는 바로 앞서 로스토프 전투 (1941년)(1941년), 뒤이어 갤럽 작전(1943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주요 사건은 근대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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