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과 중동, 3천 년 충돌의 흐름
2023년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계기로 '지금을 만든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100년 전과 1000년 전을 지나 결국 기원전까지 닿는다. 이 글은 팔레스타인과 그 주변 땅의 패권이 서방과 중동 사이를 어떻게 오갔는지를 15개의 장면으로 따라간다.
각 장면의 제목을 누르면 지구사 탐색기의 사건 페이지로 이동해, 같은 시기 다른 지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와 같은 땅에서 앞뒤로 일어난 사건을 함께 볼 수 있다.
1.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공 기원전 492년
서방과 중동이 부딪친 3천 년 역사의 출발점.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침공했지만 마라톤(기원전 490)·살라미스(480)·플라타이아이(479)에서 그리스 연합이 막아냈고, 이후 아테네는 고대 그리스의 황금기를 맞는다.
함께 보기: 마라톤 전투 기원전 490년 · 제2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기원전 480년 · 살라미스 해전 기원전 480년 · 플라타이아이 전투 기원전 479년
2. 알렉산드로스의 페르시아 정복 기원전 331년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린 결전. 페르시아 영토가 거의 그대로 알렉산드로스에게 넘어가며 패권이 다시 서방으로 왔다. 이후 이 지역은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는다.
함께 보기: 이소스 전투 기원전 333년
3. 이슬람의 예루살렘 점령 638년
무함마드의 첫 계승자들 아래 아라비아를 통일한 이슬람 세력이 동로마 제국에서 예루살렘을 넘겨받았다. 로마 이후 처음으로 중동 세력이 팔레스타인을 되찾은 순간이다.
함께 보기: 야르무크 전투 636년 · 예루살렘 포위전 637년
4. 십자군의 예루살렘 점령 1099년
제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라틴 예루살렘 왕국을 세웠다. 그러나 왕국은 오래가지 못했고, 에데사 상실과 2·3차 십자군을 거치며 영토는 차츰 이슬람 세력에게 넘어간다.
함께 보기: 제1차 십자군 1096년
5. 살라딘의 예루살렘 탈환 1187년
하틴 전투에서 이긴 살라딘이 88년 만에 예루살렘을 되찾았다. 서방과 중동이 주고받은 성지의 주인이 다시 바뀐 순간이다.
함께 보기: 하틴 전투 1187년
6. 오스만의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1453년
몽골의 힘이 약해진 틈에 일어난 오스만 튀르크가 동로마 제국의 수도를 함락했다. 로마 제국과 함께 중세가 막을 내리고 패권은 오스만으로 넘어간다. 팔레스타인은 이때부터 1차 세계대전까지 오스만의 땅이 된다. 같은 해 조선에서는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잡았다.
함께 보기: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오스만 제국이 함락되면서 동로마 제국이 멸망… 약 1453년 · 계유정난 약 1453년
7. 영국의 밸푸어 선언 1917년
1차 세계대전으로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자 팔레스타인은 영국 손에 들어간다. 영국은 이 선언으로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을 약속했고, 그 땅에 살던 아랍인들은 반발했다. 오늘날 분쟁의 직접적인 출발점이다.
함께 보기: 예루살렘 전투 (1917년) 1917년
8. 1차 중동전쟁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선언에 주변 아랍국들이 반발하며 일어난 1차 중동전쟁(이스라엘 독립전쟁). 휴전으로 끝났지만 이스라엘은 유엔 분할안보다 넓은 땅을 확보했고, 수많은 팔레스타인 난민이 생겼다.
함께 보기: 유엔 총회에서 팔레스타인 분할안이 채택되다 약 1947년
9. 2차 중동전쟁(수에즈) 1956년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자 영국·프랑스·이스라엘이 함께 이집트를 침공한 2차 중동전쟁. 미국의 중재로 이집트의 외교적 승리로 끝났지만, 이 지역에서 이스라엘의 영향력은 계속 커졌다.
10. 3차 중동전쟁(6일 전쟁) 1967년
이스라엘이 이집트·요르단·시리아를 선제공격해 엿새 만에 대승한 3차 중동전쟁. 골란고원·시나이반도·요르단강 서안·가자지구를 점령했고, 이 점령지 문제가 지금까지 이어진다.
11. 뮌헨 올림픽 참사 1972년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검은 9월단'이 올림픽 선수촌에서 이스라엘 선수단을 인질로 잡았고, 구출 작전이 실패해 인질 전원이 숨졌다. 이스라엘은 보복 폭격과 모사드의 장기 암살 작전으로 맞섰다. 중동의 분쟁이 세계 무대로 번진 사건이다.
12. 4차 중동전쟁(욤키푸르) 1973년
이집트와 시리아가 유대교 명절에 기습한 4차 중동전쟁. 초반 궁지에 몰린 이스라엘이 전세를 뒤집었지만 '불패' 신화는 깨졌고, 아랍 산유국의 석유 무기화로 세계는 1차 오일쇼크를 겪었다. 이후 1979년 이집트-이스라엘 평화조약으로 시나이반도가 이집트에 돌아간다.
13. 오슬로 협정 1993년
1993년 9월 13일 백악관에서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와 PLO의 아라파트 의장이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무력이 아닌 대화로 분쟁을 풀려 한 첫 합의로, 이듬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3천 년 충돌사에서 드문 평화의 장면이다.
함께 보기: 오슬로 협정 조인 1993년 · PLO의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과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 1993년
14. 9·11 테러 2001년
알카에다가 여객기 네 대를 납치해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을 공격한, 역사상 피해가 가장 큰 테러.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해 한 달 뒤 아프가니스탄을 공습했고(20년 전쟁), 2003년 이라크를 침공했다. 서방과 중동의 충돌이 21세기로 이어진 장면이다.
함께 보기: 아프가니스탄 전쟁 (2001년~2021년) 2001년
15.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2023년
2023년 10월 하마스의 기습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으로 시작된 전쟁으로, '5차 중동전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 등 서방은 이스라엘을, 이란 등 중동 국가들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며 3천 년 충돌의 구도가 다시 드러났다. 그 중심에는 여전히 예루살렘이 있다.
함께 보기: 10월 7일 공격 2023년
맺으며
세 종교가 같은 뿌리에서 나왔기에 이 땅은 누구에게나 소중했다. 3천 년 동안 패권은 페르시아와 그리스, 이슬람과 십자군, 오스만과 영국으로 오갔고, 그때마다 예루살렘의 주인이 바뀌었다.
오늘의 충돌이 얼마나 깊은 뿌리를 가졌는지 아는 것은 해법을 말하기 전의 첫걸음이다. 그리고 그 긴 역사 속에도 1993년 오슬로 협정처럼 대화로 풀어 보려던 순간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