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사 탐색기전쟁

예루살렘 공방전 (1099년)

1099년 · 전쟁 · 위도 31.78, 경도 35.22

제1차 십자군 전쟁, 십자군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파티마 칼리파국과 공방전을 시작하다.

기간1099년 6월 7일 ~ 1099년 7월 15일장소예루살렘상위 사건제1차 십자군

맥락 노트

제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라틴 예루살렘 왕국을 세웠다. 그러나 왕국은 오래가지 못했고, 에데사 상실과 2·3차 십자군을 거치며 영토는 차츰 이슬람 세력에게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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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과 중동, 3천 년 충돌의 흐름

패권이 서방과 중동 사이를 오가며 같은 땅의 주인이 바뀌어 온 과정

  1.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공 기원전 492년
  2. 알렉산드로스의 페르시아 정복 기원전 331년
  3. 이슬람의 예루살렘 점령 638년
  4. 십자군의 예루살렘 점령 1099년
  5. 살라딘의 예루살렘 탈환 1187년
  6. 오스만의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1453년
  7. 영국의 밸푸어 선언 1917년
  8. 1차 중동전쟁 1948년
  9. 2차 중동전쟁(수에즈) 1956년
  10. 3차 중동전쟁(6일 전쟁) 1967년
  11. 뮌헨 올림픽 참사 1972년
  12. 4차 중동전쟁(욤키푸르) 1973년
  13. 오슬로 협정 1993년
  14. 9·11 테러 2001년
  15.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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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공방전 (1099년 6월 7일 – 1099년 7월 15일)은 제1차 십자군 전쟁 때 유럽 십자군이 일으킨 전투이며, 이 결과로 이슬람 세력의 파티마 칼리파국한테서 성도 예루살렘의 점령으로 이어졌고, 거의 2세기간 이어진 기독교 세력인 예루살렘 왕국의 토대를 이루었다. 예루살렘 점령은 1095년에 시작된 성지를 점령하려는 제1차 십자군의 마지막 주요 전투였다. 이 공방전에 대한 다수의 목격담이 기록으로 남아있으며, 그 중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은 익명의 작가가 쓴 '게스타 프랑코룸'이다.

세속 국가 건설이 선포가 이뤄지던 때, 십자군 지도자 중 주요 인물이던 부용의 고드프루아가 통치자로 선출되었으나, '왕'이라는 칭호는 피했다. 이 공방전 이후에 수 천 명의 무슬림들과 유대인들에 대한 학살과 성전산이 기독교 성소로 바뀌는 일이 벌어졌다.

출처: 위키백과 (CC BY-SA 4.0) · 위키백과 2025-05-08 기준

맥락 한눈에

1099년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옥스퍼드 대학교 설립(1096년), 동서교회 대분열(1054년), 볼로냐 대학교 설립(1088년)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는 바로 앞서 안티오키아 공국(1098년), 뒤이어 트리폴리 백국(1102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주요 사건은 중세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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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기, 다른 지역에서는

같은 지역의 앞뒤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