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위대 제13무장산악사단 한트샤르
9월 17일, 프랑스 점령지에서 훈련 중이던 친위대 제13무장산악사단 한트샤르의 파르티잔 지지 병사들이 페리드 잔니치 등의 주도로 독일군에 맞서 봉기했으나 곧 진압되었다. (영어 위키백과 번역)
친위대 제13무장산악사단 한트샤르 (제1크로아티아)(13. Waffen-Gebirgs-Division der SS „Handschar“ (kroatische Nr. 1)))는 나치 독일의 무장친위대 사단 중 하나이다.
1944년 3월부터 12월까지 크로아티아 독립국에서 활동하는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에 대한 대분란전에 종사했다. 사단 이름 "한트샤르"는 예멘을 기원으로 하는 외날도검 칸자르를 의미하는 것이다. 수백년 전 크로아티아가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을 시절 튀르크인 경관들이 칸자르를 패용했던 바 있다. 한트샤르 사단은 최초의 비독일계 무장친위대 사단이며, 이는 무장친위대가 다민족 혼성부대로 팽창하는 현상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병사들은 주로 보스니아 무슬림, 가톨릭 크로아티아인이었고 장교 및 부사관은 대부분 독일인 또는 독일계 유고슬라비아인(민족독일인)이었다. 한트샤르 사단은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와 크로아티아 포글라브니크 안테 파벨리치에게 동시에 충성을 맹세했다.
시르미아지역에서 잠시 싸우다가 사바강을 도하해 보스니아 북동부로 갔다. 이후 사바강, 보스나강, 드리나강, 스페르차강 사이의 보스니아 북동부 지역을 "보안지대"로 지정했다. 여러 차례에 걸쳐 보안지대 바깥에서도 전투를 벌였으며, 잔인하고 야만적이기로 악명이 높았다. 이 악명은 전투를 잔혹하게 해서뿐만이 아니라 세르비아인과 유대인 민간인들에게 행한 가혹행위의 탓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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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 한눈에
1943년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1939년), 냉전(1945년), 국제 통화 기금(1945년)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는 바로 앞서 동부 전선 (제2차 세계 대전)(1941년), 뒤이어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1945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주요 사건은 근대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다.
3D 지구본에서 보기 → 나무위키위키백과같은 시기, 다른 지역에서는
- 제2차 세계 대전 1939년
- 냉전 1945년
- 국제 통화 기금 1945년
- 세계은행 1944년
- 아랍-이스라엘 분쟁 1948년
- 유엔 헌장 1945년
- 올림포스산 1938년
- 스탈린그라드 전투 1942년
같은 지역의 앞뒤 사건
- 엑스선 1895년
- 체코슬로바키아 1918년
- 바이마르 공화국 1918년
- 나치 독일 1933년
- 핵분열 1938년
- 안슐루스 1938년
-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1940년
- 동부 전선 (제2차 세계 대전) 1941년
-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 1945년
- 포츠담 회담 1945년
- 동독 1949년
- 서독 194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