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일 전투
조지 매클렐런 장군의 북부 동맹군이 화이트오크 스웜프(White Oak Swamp) 남쪽에 도착하다. 미국 남북 전쟁 칠일 전투 중 여섯 번째인 글렌데일 전투가 벌어지다.
칠일전투(Seven Days Battles)는 남북 전쟁 동부 전선의 일부이며, 1862년 6월 25일부터 7월 1일까지 7일 간 여섯 차례 큰 전투가 연속해서 벌어졌다. 남군 장군 로버트 E. 리가 침입해 온 북군의 조지 매클렐런 소장이 지휘하는 포토맥 군을 리치먼드 부근에서 버지니아 반도 아래로 쫓아냈다. 이 전투는 반도 방면 작전의 마지막 단계가 되었으며, 독립적인 작전이 아니었다.
칠일전투는 6월 25일에 북군이 공격한 소규모의 오크 그로브 전투에서 시작되었지만, 리 군은 6월 26일에 비버댐 크릭 전투, 6월 27일의 게인즈밀 전투, 6월 27일과 6월 28일 가넷츠 앤 골딩스 팜 전투와 6월 29일의 사베이지 역에서 북군의 후위 공격으로 이어지는 연속 공격을 시작한 것으로, 북군의 매클렐런은 곧바로 주도권을 잃었다. 조지 매클렐런이 이끄는 포토맥 군은 후퇴를 계속하여, 안전 구역인 제임스 강 해리슨스 랜딩으로 향했다. 리 군이 북군을 잡을 마지막 기회는 6월 30일의 글렌데일 전투였지만 명령대로 군이 움직이지 않았고, 북군이 맬번 힐의 견고한 방어 진지로 도주하는 것을 허용했다. 7월 1일의 맬번힐 전투는 리 장군이 쓸모없는 정면 공격을 감행하여 강력한 보병과 포병의 방어로 큰 손실을 입었다.
칠일전투는 매클렐런 군이 제임스 강에 인접한 비교적 안전한 장소까지 철수를 했지만, 퇴각 과정에서 약 16,000명의 손실을 냈다. 리 군은 이레 동안 공세를 계속했지만, 20,000명 이상의 손실을 냈다. 리는 매클렐런이 더 이상 리치몬드에 위협이 될 수 없다고 확신하고 북쪽으로 이동하여 버지니아 북부 방면 작전과 메릴랜드 방면 작전을 수행했다.
출처: 위키백과 (CC BY-SA 4.0) · 위키백과 2025-08-03 기준
맥락 한눈에
1862년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남북 전쟁(1865년), 오스트리아-헝가리(1867년), 인도 제국(1858년)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는 바로 앞서 연방 (남북 전쟁)(1861년), 뒤이어 게티즈버그 연설(1863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주요 사건은 근대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다.
3D 지구본에서 보기 → 나무위키위키백과같은 시기, 다른 지역에서는
- 남북 전쟁 1865년
- 오스트리아-헝가리 1867년
- 인도 제국 1858년
- 교토부 1868년
- 일본 제국 1868년
-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1870년
- 이탈리아 왕국 1861년
- 노이슈반슈타인성 개관 1869년
같은 지역의 앞뒤 사건
- 뉴욕 대학교 설립 1831년
- 듀크 대학교 설립 1838년
- 스미스소니언 협회 개관 1846년
- 메릴랜드 대학교 설립 1856년
- 연방 (남북 전쟁) 1861년
- 게티즈버그 연설 1863년
- 게티즈버그 전투 1863년
- 알래스카 매매 1867년
- 미국 자연사 박물관 개관 1869년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개관 1870년
- 존스 홉킨스 대학교 설립 1876년
- 자유의 여신상 188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