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우스파
아리우스주의 또는 아리우스파(라틴어: Arianismus, 그리스어: Αρειανισμός)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관구의 사제인 아리우스가 주장한 기독교 신학이다. 아리우스는 ‘성자’ 예수는 '성부'에 의해 시간 이전에 창조된 존재(피조물)이며, 성부와 함께 영속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보았다. 아리우스에 따르면 성자가 성부라는 성경의 증언은 비유적 표현이다.
아리우스파라는 명칭은, 그들 스스로가 그렇게 불렀던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이들을 묘사할 때 사용한 단어이다. 아리우스파는 성부와 성자의 본질이 동일하다는 동일본질 교리를 끝까지 거부했다. 아리우스의 삼위일체론은 나중에 안티오케이아의 아에티우스와 그의 제자인 에우노미우스에 의해 상이본질(anomoeanism)이라는 극단적인 이론으로 변모했다. 아리우스가 성자는 성부에서 유래했으므로 그 둘이 본질적으로 유사하다고 주장한데 반해, 상이본질론자들은 성부와 성자의 본질이 동일하지도 않고, 본질이 유사하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아리우스가 활동하던 시기의 교회에서는 성자의 신성에 대해 동일본질과 아리우스주의의 두 삼위일체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딜레마를 가지고 있었고, 학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삼위일체론의 논리적인 허점을 채우고자 노력했다. 당대 아리우스가 아리우스주의의 선봉장이었다면, 동일본질의 선봉장은 교부로 인정받는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였다. 아타나시우스는 성자와 성부가 본질적으로 동일한 존재로 보았다. 아리우스는 성자가 성부의 아들이라면 성부가 성자를 낳거나 창조한 것일텐데, 그렇다면 성자가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었을 때에는 존재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서기 325년 소집한 최초의 세계공의회인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리우스의 믿음은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뒤이어 두 번째 세계 공의회인 381년의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도 아리우스주의는 정통 신학으로부터 벗어난 이단임을 확언했다. 그 후로 아리우스파는 항상 보편교회로부터 이단으로 비난받아왔고, 현재에도 정교회, 로마 카톨릭, 개신교 등 주류 기독교회들은 모두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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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 한눈에
319년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굽타 제국(320년), 진 (위진)(266년), 갈리아 제국(260년)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 뒤이은 기록은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년)이다. 같은 시대의 다른 주요 사건은 고대 문명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다.
3D 지구본에서 보기 → 나무위키위키백과같은 시기, 다른 지역에서는
같은 지역의 앞뒤 사건
- 제1차 니케아 공의회 325년
- 니케아 신경 325년
- 아드리아노폴리스 전투 378년
-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381년
- 동로마 제국 395년
- 에페소스 공의회 431년
- 칼케돈 공의회 451년
- 로마법 대전 528년
- 아야 소피아 개관 532년
- 니카 반란 532년
- 유스티니아누스 페스트 541년
- 제2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55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