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분
대명분(스코틀랜드 게일어: An t-Adhbhar Mòr, 영어: Great Cause)이란 1286년 알바 왕국(오늘날의 스코틀랜드)의 왕 알락산다르 3세가 낙마사하고, 그 유일한 적손인 노르웨이 왕녀 마르그레트 알렉산데르스도티르가 요절하면서 공위기가 시작되자 스코틀랜드 왕위를 두고 벌어진 분쟁이다.
1290년, 마르그레트(당시 3세)를 보정하던 스코틀랜드의 수호자들은 잉글랜드 왕세자 에드워드 캐너번(당시 5세)과 마르그레트의 약혼을 주선했다(버검 조약). 이 조약에서는 여러 가지를 규정하면서, 마르그레트와 에드워드의 자식이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의 왕위를 모두 물려받을 것이나,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의 속국이 아니며 독립국으로서 동군연합을 이룰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것은 명백히 스코틀랜드의 독립주권을 보존하기 위한 의도였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26일, 마르그레트가 오크니에서 죽으면서 스코틀랜드 왕위는 공석이 되었다. 가장 유력한 왕위요구자는 갤러웨이의 존 발리올이었다. 존은 강력한 에드워드 1세의 대행자로 스코틀랜드에 파견되어 있던 더럼 주교 안토니 베크와 동맹하고 스스로를 "스코틀랜드의 후계자(heir of Scotland)"라고 칭했다. 또다른 강력한 요구자는 애넌데일의 로버트 5세 드 브루스였다. 로버트는 마르그레트의 대관식 장소로 예정되었던 장소에 군대를 모았고, 마르 백작 돔날 1세 막 일리엄과 애솔 백작 데이비드 1세 드 스트라스보기 역시 로버트의 편을 들어 군사를 모은다는 소문이 팽배했다. 스코틀랜드는 계승권 내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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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 한눈에
1292년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오스만 제국(1299년), 쿠스코(1300년), 원나라(1271년)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는 바로 앞서 캔터베리 대주교 요하네스 페캄이 전임자 로버트 킬워드비의 정죄효력을…(1284년), 뒤이어 스털링 다리 전투(1297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주요 사건은 중세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다.
3D 지구본에서 보기 → 나무위키위키백과같은 시기, 다른 지역에서는
같은 지역의 앞뒤 사건
- 아일랜드 영지 1171년
- 에든버러성 개관 1200년
- 귀네드의 에드워드 1세 시대 성곽군 1280년
- 카나번성 1283년
- 캔터베리 대주교 요하네스 페캄이 전임자 로버트 킬워드비의 정죄효력을… 1284년
- 스털링 다리 전투 1297년
- 폴커크 전투 1298년
- 스코틀랜드의 독립운동 지도자인 윌리엄 월리스가 처형되다 1305년
- 배넉번 전투 1314년
- 콘월 공국 1337년
- 밸모럴성 개관 1390년
-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 설립 141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