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사 탐색기전쟁

임진왜란

1592년 · 전쟁 · 위도 37.50, 경도 127.00

임진왜란 발발.

기간1592년 5월 23일 ~ 1598년 12월 16일장소한반도참여조선 선조, 만력제, 도요토미 정권, 고요제이 천황, 도요토미 히데요시결과북관대첩비상위 사건한일 관계

임진왜란(壬辰倭亂)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한반도에서 조선과 일본 사이에 벌어진 국제전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의 통일을 이룩한 이후 조선을 침공했다. 1592년 동래성 전투를 시작으로 일본군이 조선군을 격파하며 수도 한양이 1592년 6월 함락되었다. 선조는 일본군을 피해 도주했으나,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일본군은 임진강을 건너 1592년 7월 평양성까지 함락했다. 평양성 함락 이후 가토 기요마사는 강원도와 함경도를 침략했고, 조선 조정은 의주로 피난을 간 뒤 명나라에 도움을 요청했다.

일본군은 평양성 함락 후 더 이상 북진하지 못했다. 이는 1592년 7월 8일 이순신이 한산도 대첩에서 일본 수군 주력 부대를 격파해 해상 보급로를 장악하고, 같은 달 이치 전투에서 조선 육군이 전라도로 넘어가는 길목을 지키면서 일본군의 보급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었다.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이 일본군의 후방을 교란하고, 1592년 가을 조선 육군이 곳곳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명나라군 역시 1592년 8월 조승훈을 총사령관으로 하여 참전하였으나 평양성 공략에 실패했다. 1593년 1월 이여송이 이끄는 조명연합군이 평양성을 탈환했지만 한양 탈환을 목적으로 진격하던 조명연합군이 벽제관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전선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1593년 3월 권율이 이끄는 조선군이 행주산성에서 일본군에 큰 피해를 입힌 이후 같은 해 5월 일본군은 한양에서 철수했다.

전황이 어느 쪽에도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과 명은 조선을 배제한채 종전을 위한 협상을 진행했다. 양측의 협상은 실패로 끝났고, 1596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재침했다. 이전 침공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일본군은 전라도를 완전히 장악하고 칠천량 해전으로 조선 수군을 궤멸시킨 뒤 빠르게 북상했다. 그러나 직산 전투에서 명군과 충돌한 일본군은 더 이상 북진하지 못했고, 명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막아내면서 서해로의 진출 시도도 좌절되었다. 일본군은 이후 남해안에 거대한 방어망을 만들고 이 지역에 왜성을 짓고 항전했다. 조선-명 연합군은 1598년 울산성, 사천성, 왜교성 등을 공격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 이후 오대로의 명령에 따라 일본군은 조선에 철수했고, 1598년 12월 조선-명나라 연합수군과 일본 수군이 벌인 노량 해전을 끝으로 임진왜란이 끝났다.

출처: 위키백과 (CC BY-SA 4.0) · 위키백과 2026-08-27 기준

맥락 한눈에

1592년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이오 (위성)(1610년), 에든버러 대학교 설립(1583년), 케플러의 행성운동법칙(1609년)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는 바로 앞서 기축옥사(1589년), 뒤이어 벽제관 전투(1593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주요 사건은 근세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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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기, 다른 지역에서는

같은 지역의 앞뒤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