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사 탐색기전쟁

레판토 해전

1571년 · 전쟁 · 위도 38.20, 경도 21.30

베네치아 공화국, 로마 교황, 스페인 동맹함대가, 레판토(그리스어 나브팍토스)에서 벌어진 레판토 해전서 투르크 함대를 격파하다.

시점1571년 10월 7일장소나프파크토스, 코린토스만국가오스만 제국 시대의 그리스, 그리스참여오스만 제국, 신성 동맹, 교황령, 베네치아 공화국, 제노바 공화국상위 사건Ottoman–Venetian War of 1570–1573

레판토 해전(그리스어: Ναύπακτος, 튀르키예어: İnebahtı, 이탈리아어: Battaglia di Lepanto, 라틴어: Proelium Lepanthinum, 영어: Battle of Lepanto)은 1571년 10월 7일 베네치아 공화국, 교황령, 스페인 왕국(나폴리와 시칠리아, 사르데냐 포함)과 제노바 공화국, 사보이 공국, 몰타 기사단 등이 연합한 신성 동맹 함대와 오스만 제국이 벌인 해상 전투로 오스만 제국 해군이 참패하였다.

10월 7일 일요일 아침, 레판토 해군 기지에서 서쪽으로 출항한 오스만 제국 함대와 메시나에서 출항한 신성 동맹의 함대가 그리스 서부의 바깥쪽에 있는 파트라스 만의 끄트머리에서 만나면서 5시간에 걸친 전투가 시작되었다. 유럽의 신성동맹은 승리를 통해 오스만의 침략 위험으로부터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을 보호하였고, 지중해의 패권장악을 위해 서진하는 오스만의 세력 팽창을 저지할 수 있었다.

이번 전투는 노를 저어 주동력을 얻는 갤리선과 갤리아스선으로 구성된 군함들이 벌인 해상 전투로서 해전사에 유명한 전투중 하나이다. 양진영에서 동원된 군함(수송선 포함)은 총 400 여척으로 고대 이래 역사상 가장 큰 해전이었다. 크게 배패한 오스만은 육상에 이어 해상에서의 세력팽창에도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이번 전투가 벌어지게 된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사건은 1570년 7월에 오스만이 베네치아의 속령인 키프로스 섬을 침공하였기 때문이였다.

출처: 위키백과 (CC BY-SA 4.0) · 위키백과 2025-04-07 기준

맥락 한눈에

1571년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사우바도르(1549년), 에든버러 대학교 설립(1583년), 파테푸르 시크리(1569년)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는 바로 앞서 산토리니 칼데라 화산 분화(1570년), 뒤이어 캄파넬라의 칼라브리아 이주(1598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주요 사건은 근세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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