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 프랑스에서 7만 명 가량의 위그노 교도가 학살되다.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프랑스어: Massacre de la Saint-Barthélemy)은 기독교의 역사이고 1572년 8월 24일(성 바르톨로메오의 축일)
부터 10월까지 있었던, 로마 가톨릭교회 추종자들이 위그노 즉 프랑스 개신교도들을 학살한 사건을 가리킨다. 샤를 9세 때 어머니인 메디치 가의 카타리나가 아들을 위하여 후견 정치를 하고 있었고, 프로테스탄트들의 지도자인 나바라의 앙리와 샤를 9세의 누이와의 결혼으로 화해의 길이 바야흐로 열리려고 하였다. 그런데 카타리나와 기즈 가의 사람들은 1572년 8월 23-24일 바르톨로메오 축일 밤에 참석한 위그노파들을 살해하는 무서운 계획을 시도하기 위하여 이 기회를 이용하였다. 특히 콜리니도 희생으로 쓰러진 이 “파리의 유혈 결혼식”에 이어, 지방에서 위그노파에 대한 대량 학살이 잇달았다. 희생자의 수는 약 3만명에서 7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 사건은 세계 역사상 가장 무서운 범죄 중 하나로 낙인찍을 수밖에 없었다. 이 시절 인민대중들은 완전히 미쳐날뛰어서 귀족 여성들도 강간하고 죽이기도 했으나 몇몇 귀족 남성들한텐 덤비다가 오히려 학살을 당해서 몇몇 무리가 해산되기도 했었다.
이 소식은 곧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신실한 가톨릭교도였던 당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2세까지도 이 소식을 듣고 공포를 금치 못했다고 한다.
출처: 위키백과 (CC BY-SA 4.0) · 위키백과 2026-04-15 기준
맥락 한눈에
1572년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발레타(1566년), 파테푸르 시크리(1569년), 아그라 요새(1565년)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는 바로 앞서 네덜란드 독립 전쟁(1568년), 뒤이어 레이던 대학교 설립(1575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주요 사건은 근세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다.
3D 지구본에서 보기 → 나무위키위키백과같은 시기, 다른 지역에서는
- 발레타 1566년
- 파테푸르 시크리 1569년
- 아그라 요새 1565년
- 레판토 해전 1571년
- 비간 (필리핀) 1572년
- 델리의 후마윤 묘지 1560년
- 셀리미예 모스크 (에디르네) 1575년
- 가정대지진 1556년
같은 지역의 앞뒤 사건
- 콜레주 드 프랑스 설립 1530년
- 프랑스 식민제국 1534년
- 과학 혁명 1543년
- 반종교개혁 1545년
- 제네바 대학교 설립 1559년
- 위그노 전쟁 1562년
- 네덜란드 독립 전쟁 1568년
- 레이던 대학교 설립 1575년
- 네덜란드 공화국 1581년
- 무적함대 1588년
- 잉글랜드 내전 1642년
- 베르사유궁 166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