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지마 전투
제2차 세계대전: 미군, 이오지마섬에 상륙. 이오지마 전투 개시
이오지마 전투(일본어: 硫黄島の戦い, 영어: Battle of Iwo Jima, 1945년 2월 19일 ~ 1945년 3월 26일)는 태평양 전쟁 말기, 가잔 열도의 이오섬에서 벌어진 미군과 일본군 간의 전투를 말한다. 미군의 작전명은 디태치먼트 작전(Operation Detachment)으로, 사우스필드와 노스필드를 점령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일본군은 이오섬을 중무장한 요새로 탈바꿈하였고, 이 요새는 벙커, 숨겨진 포 진지, 18 km의 터널로 이루어진 밀집된 방어체계망이었다. 미군은 전투 내내 미국 해군의 광범위한 함포 사격을 지원받았으며 해병대 관제사들의 지원을 통해 제공권을 장악하였다. 이오섬에서 벌어진 5주 간의 전투는 태평양 전쟁의 전투 중 가장 치열하고 잔인한 전투 중 하나로 꼽힌다.
이오지마 전투로 인해 발생한 일본군의 전투 사망자는 미국인 사망자의 3배에 달했지만, 미국 해병대가 참가한 태평양 전쟁의 전투 중에서 유일하게 미군의 총 사상자가 일본인 사망자를 능가했다. 이오지마 전투 초기의 일본군 21,000명 중 오직 216명만이 포로로 잡혔으며, 나머지 대부분은 전사했지만, 3,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부상으로 죽거나 몇 주 후 항복할 때까지 다양한 동굴 체계 내에서 며칠 동안 저항을 계속한 것으로 추정된다. 양측 모두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지만, 일본군의 철수나 증원이 불가능한 상황에 더하여 희박한 식량 및 보급품, 그리고 병력과 무기에서 미군의 압도적인 우위로 인해 일본군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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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 한눈에
1945년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냉전(1945년), 국제 통화 기금(1945년), 동독(1949년)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 뒤이은 기록은 오가사와라 제도 일본 반환(1968년)이다. 같은 시대의 다른 주요 사건은 현대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다.
3D 지구본에서 보기 → 나무위키위키백과같은 시기, 다른 지역에서는
- 냉전 1945년
- 국제 통화 기금 1945년
- 동독 1949년
- 세계은행 1944년
- 6.25 전쟁 1950년
-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1940년
- 서독 1949년
- 아랍-이스라엘 분쟁 1948년
같은 지역의 앞뒤 사건
- 가잔·류큐 열도 전역 1945년
- 오가사와라 사건 1945년
- 오가사와라 제도 일본 반환 1968년
- 오가사와라제도·니시노섬의 옆에 해저 화산 활동에 의해 출현한 니이지마… 1973년
- 2009년 7월 22일 일식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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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오가사와라 제도 서쪽 해역 지진 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