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
제2차 세계 대전: 2차 엘알라메인 전투가 영국의 승리로 끝나다.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는 제2차 세계 대전 북아프리카 전역의 전투 중 하나로, 1942년 10월 23일부터 1942년 11월 11일까지 이어졌다. 현대 학계에서 이 전투는 스탈린그라드 전투, 과달카날 전역과 함께 연합국이 추축국의 공세에 맞서 전략적인 반격 단계에 진입한 전투로 평가하고 있다. 1942년 제1차 엘 알라메인 전투와 알람 엘 할파 전투로 추축국의 이집트 침공을 저지한 연합국은 버나드 몽고메리의 주도 하에 반격 작전을 계획하고 있었다.
1942년 10월 23일 오후 10시 영국 제8군의 사령관 버나드 몽고메리는 키드니 능선에 주둔한 독일군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공격 시작 후 11월 4일까지 양측 군대는 엘 알라메인 일대에서 공방을 거듭했다. 10월 31일 오스트레일리아군이 수행한 수퍼차지 작전이 실패하면서 전선은 교착되었지만, 11월 2일 추축국 군대가 후퇴를 시작하고 11월 3일 전선 남쪽의 영국군과 자유 프랑스군이 전선을 돌파하였다. 11월 4일 전선을 지키던 이탈리아 3개 사단이 궤멸하면서 전황은 연합군에게 유리하게 바뀌었고, 11월 11일까지 이집트 국경으로 적을 몰아내는데 성공하면서 서부 사막 전역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이 전투로 에르빈 롬멜이 이끄는 아프리카 군단은 이집트에서 철수하여 리비아에서 재정비할 수 밖에 없었고, 이탈리아군은 핵심 전력 3개 사단이 궤멸하여 작전 능력을 상실했다. 연합국은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를 기점으로 1942년 12월 리비아 중부 해안 지대까지 진격할 수 있었다. 이 전투와 동시에 11월 8일 횃불 작전이 시작되면서 북아프리카에 주둔 중인 독일군은 양면 작전을 수행하게 되었고, 공세에 수비로 전략을 변경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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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 한눈에
1942년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1939년), 냉전(1945년), 국제 통화 기금(1945년)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는 바로 앞서 크루세이더 작전(1941년), 뒤이어 1952년 이집트 혁명(1952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주요 사건은 근대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다.
3D 지구본에서 보기 → 나무위키위키백과같은 시기, 다른 지역에서는
- 제2차 세계 대전 1939년
- 냉전 1945년
- 국제 통화 기금 1945년
- 세계은행 1944년
-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1940년
- 핵분열 1938년
- 유엔 헌장 1945년
- 스탈린그라드 전투 1942년
같은 지역의 앞뒤 사건
- 이집트 박물관 개관 1902년
- 카이로 대학교 설립 1908년
- 이집트 왕국 1922년
- 북아프리카 전역 1940년
- 컴퍼스 작전 1940년
- 크루세이더 작전 1941년
- 투브루크 공방전 1941년
- 제1차 엘 알라메인 전투 1942년
- 알렉산드리아 대학교 설립 1942년
- 1952년 이집트 혁명 1952년
- 아랍 연합 공화국 1958년
- 소모전 (중동) 196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