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우 피살 사건
서울 종로에서 윤명선 피습 사건이 발생하다. 송진우 피살 사건과 신탁통치 반대 운동의 여파가 수습된 한국 각지에 다시 테러 공포증을 불러일으켰고 미군정 경무부와 수도경찰청의 검문검속을 강화시키는 원인을 제공한다.
송진우 피살 사건은 1945년 12월 30일 새벽 6시 한국민주당 당수 송진우가 서울 원서동 자택에서 한현우 등 자객들의 피습을 받고 사망한 사건이다. 한국민주당을 창당하여 수석 총무가 된 송진우는 당 조직을 확대했으며, 군정에 협력했고, 그리고 망명 정객들과의 연계를 통해 정략적인 활동을 개시했다.
그러나 1945년 12월 27일 모스크바 삼상 회의 결과 발표된 조선의 미,소 양측의 5개년 신탁통치의 문제에 대해서는 김구가 이끄는 임시정부와 견해 차이를 나타냄으로써 마찰을 빚었고, 이로 인해 송진우가 신탁통치를 지지한다고 생각한 한현우(당시 34세)와 유근배(21세) 두 사람에 의해 피격 암살당하고 말았다.
하지는 송진우 암살의 배후로 김구를 지목하였다. 그밖에 장택상도 송진우의 암살범으로 김구를 지목하였고, 조병옥도 김구를 송진우의 암살 배후로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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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 한눈에
약 1946년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냉전(1945년), 국제 통화 기금(1945년), 동독(1949년)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는 바로 앞서 이오지마의 성조기(1945년), 뒤이어 6·25 전쟁(1950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주요 사건은 현대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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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지역의 앞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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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개조 평화 원칙 1918년
- 연합국 (제1차 세계 대전) 19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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