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토부르크 숲 전투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 바루스의 로마군이 아르미니우스(독일명 헤르만)의 게르만족에게 전멸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독일어: Schlacht im Teutoburger Wald 슐라흐트 임 토이토부르거 발트[*]) 또는 바루스 참사(라틴어: Clades Variana 클라데스 바리아나[*])는 기원후 9년 아르미니우스가 통합한 게르만족 연맹과 푸블리우스 큉크틸리우스 바루스 총독이 지휘한 로마군 사이에서 일어난 전투이다. 게르만족이 3개 로마 군단과 그 보조군들을 박살내면서 결정적 승리를 거두었다. 아르미니우스는 게르만족 출신으로 바루스의 보조군에 입대했던 장교 출신으로, 로마 시민권을 얻고 로마에서 군사 교육을 받았다. 때문에 로마군의 전술을 꿰뚫어보고 그들을 기만하여 승리할 수 있었다.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 이후 로마는 여러 차례 게르만족에 대한 징벌원정을 벌였지만 이후 멸망할 때까지 라인강 동안의 게르마니아를 영영 지배하지 못한다.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는 게르마니아의 로마 편입을 막음으로써 고대 게르만족과 로마 제국 양자의 역사에 거대한 파급 효과를 미쳤다. 로마 당대의 역사가들과 근현대의 사학자들은 모두 토이토부르크에서 아르미니우스가 거둔 승리가 로마 사상 가장 거대한 패배로, 군사사상 가장 결정적인 전투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사의 큰 그림을 결정한 변곡점 중 하나였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통설에 반대하고 로마의 팽창이 중단된 것은 게르만족이 로마를 막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로마의 실용적 필요에 따른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학설들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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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 한눈에
9년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쿠샨 제국(30년), 삼국 시대(기원전 18년), 예수의 부활(33년)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는 바로 앞서 아우구스투스의 명령으로 티베리우스가 게르마니아에서의 반란을 진압하다(1년), 뒤이어 게르마니아 수페리오르의 로마 군단이 갈바에 대한 충성 맹세를 거부하고…(69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주요 사건은 고대 문명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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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지역의 앞뒤 사건
-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브리튼 침공 기원전 56년
- 갈리아 전쟁 4년 기원전 55년
- 뫼즈강·라인강 부근 게르만군 학살 기원전 55년
- 우시페테스·텐크테리 격파 기원전 55년
- 카이사르의 라인강 도하 기원전 55년
- 암비오릭스의 반란과 로마군 전멸 기원전 54년
- 카이사르의 암비오릭스 반란 진압 기원전 53년
- 아우구스투스의 명령으로 티베리우스가 게르마니아에서의 반란을 진압하다 1년
- 게르마니아 수페리오르의 로마 군단이 갈바에 대한 충성 맹세를 거부하고… 69년
- 마르코만니 전쟁 166년
- 갈리아 제국 260년
- 알레만니아 3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