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사 탐색기전쟁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1946년 · 전쟁 · 위도 21.03, 경도 105.85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발발

기간1946년 12월 19일 ~ 1954년 8월 1일장소프랑스령 인도차이나국가프랑스령 인도차이나참여비엣민, 프랑스 제4공화국, 캄보디아 왕국 (1953년-1970년), 라오스 왕국상위 사건인도차이나 전쟁, 냉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은 프랑스와 베트남 민주공화국(베트민) 및 양측 동맹국들 간에 1946년 12월 19일부터 1954년 7월 21일까지 벌어진 전쟁이다. 대부분의 전투는 북베트남의 통킹 지역에서 벌어졌으나, 전쟁은 베트남 전역을 휩쓸었고 이웃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보호령인 라오스와 캄보디아로도 확산되었다.

1945년 7월 포츠담 회의에서 연합군 합동참모본부는 북위 16도 이남의 인도차이나를 동남아시아 사령부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했으며, 이는 영국의 마운트배튼 제독의 지휘 하에 있었다. 일본의 항복일인 1945년 9월 2일, 호찌민은 하노이(통킹의 수도)에서 베트남 민주공화국(DRV) 수립을 선포했다. 1945년 9월 말, 중국군이 통킹에 진입해 북쪽의 일본군은 장제스에게 항복했으며, 같은 시기에 영국군은 사이공(코친차이나의 수도)에 상륙하였고 인도차이나반도 남쪽의 일본군은 영국군에 항복했다. 중화민국은 당시 하노이를 장악하고 있던 호찌민의 베트남 민주공화국 정부를 인정했지만, 영국은 사이공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고 프랑스에 권한을 위임했다. 이전에 OSS(미국 전략사무국) 대표들이 베트민을 지원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베트남 민주공화국은 일본 치하에서 통치했던 바오다이 황제가 퇴위한 후 약 20일 동안 베트남 전역의 유일한 민간 정부로 활동했다.

1945년 9월 23일, 사이공의 영국 사령관의 묵인 하에 프랑스군이 베트남 민주공화국 지방 정부를 전복하고 코친차이나에서 프랑스의 권위 회복을 선언했다. 곧바로 사이공 주변에서 게릴라전이 시작되었으나, 프랑스는 점차 인도차이나 대부분을 재점령했다. 호찌민은 프랑스와 협상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저강도 분쟁이 1년간 이어진 후, 1946년 12월 본격적인 전쟁이 발발하면서 호찌민과 그의 정부는 지하로 숨어들었다. 프랑스는 인도차이나를 연방화하여 안정시키려 했고, 1949년에는 바오다이 전 황제를 복위시켜 새롭게 수립된 베트남국의 통치자로 세웠다. 전쟁 초기 몇 년간은 프랑스를 상대로 한 저강도 농촌 반란이 중심이었다.

출처: 위키백과 (CC BY-SA 4.0) · 위키백과 2026-01-25 기준

맥락 한눈에

1946년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냉전(1945년), 국제 통화 기금(1945년), 동독(1949년)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는 바로 앞서 베트남 민주공화국(1945년), 뒤이어 라오스 왕국(1947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주요 사건은 현대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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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기, 다른 지역에서는

같은 지역의 앞뒤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