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노사의 굴욕
1월 25일, 하인리히 4세가 레조에밀리아 근처 카노사성으로 가 교황 그레고리오 7세를 만났다. 사흘간 문 앞에서 기다린 끝에 몇 가지 조건을 서약하고 파문을 사면받았다. (영어 위키백과 번역)
카노사의 굴욕(Road to Canossa, Walk to Canossa, Humiliation of Canossa)은 1077년 1월 28일,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가 자신을 파문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를 만나기 위해 이탈리아 북부의 카노사 성으로 가서 용서를 구한 사건을 말한다. 교회의 성직자 임명권인 서임권을 둘러싸고 독일왕과 교황이 서로 대립하던 중에 발생하였다. 교황권력이 황제권력보다 우위에 서게 되는 전환기에 벌어진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하인리히 4세는 굴욕을 맛보았으나 독일에서의 권력 장악에 성공한 후 1084년 로마를 탈환하여 교황을 폐위하며 복수를 하였다. 그레고리우스 7세 교황은 로마를 떠나 이듬해 망명지에서 쓸쓸히 객사하였다. 카노사의 굴욕은 세속 군주가 굴욕을 맛본 대표적인 사건이라 한다면 14세기 초에 있었던 '아나니 사건'은 교황이 겪은 치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1303년 교황 보니파시오 8세는 교황별궁이 있는 아나니에서 생포된 후 로마 귀족가문 출신 '시아라 콜로나'에게 뺨을 맞았고 그 충격으로 인해 한 달 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출처: 위키백과 (CC BY-SA 4.0) · 위키백과 2026-06-19 기준
맥락 한눈에
1077년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제1차 십자군(1096년), 셀주크 제국(1037년), 무라비트 왕조(1040년)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는 바로 앞서 동서교회 대분열(1054년), 뒤이어 뷔르템베르크(1083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주요 사건은 중세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다.
3D 지구본에서 보기 → 나무위키위키백과같은 시기, 다른 지역에서는
같은 지역의 앞뒤 사건
- 레히펠트 전투 955년
- 케른텐 공국 976년
- 피사 공화국 1000년
- 제노바 공화국 1005년
- 동서교회 대분열 1054년
- 호엔잘츠부르크성 개관 1077년
- 뷔르템베르크 1083년
- 볼로냐 대학교 설립 1088년
- 피렌체 공화국 1115년
- 보름스 협약 1122년
- 오펜부르크 1148년
- 파도바 대학교 설립 12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