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온조왕이 백제를 세우고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다.
백제(百濟)는 한국의 고대 국가 중 하나로, 고구려, 신라와 함께 삼국 시대를 구성하였다. 고구려에서 남하한 온조왕이 세운 국가가 기원이다. 초기에 명칭은 십제(十濟)였었고, 이후에는 백제(百濟)로 바꾸었으며, 그리고 성왕 시기에는 남부여(南扶餘)라고 하였다. 백제는 원래 마한의 54소국 중 하나였으나 온조왕 이래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고이왕 시기 백제는 중앙집권을 위해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들여왔으며, 백제는 이에 힘입어 4세기 근초고왕 때 전성기를 맞아 가야를 복속하고 황해도로 진출했으며 고구려와 평양성에서 전투를 벌여 고구려 국왕 고국원왕을 죽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공격으로 한강 이북을 상실하고 장수왕의 침략 때는 수도 위례성이 함락되어 웅진으로 천도하였다.
고구려에 맞서기 위해 백제는 신라와 나제 동맹을 체결하였다. 성왕 시기 백제는 국력을 회복하여 수도를 사비성으로 옮기고, 여러 개혁을 단행하고 적극적인 확장 정책으로 한강 유역을 일시적으로 되찾았으나 신라 진흥왕의 배신으로 한강 유역을 잃었다. 이후 관산성 전투에서 성왕이 전사하면서 백제는 다시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백제는 이후 고구려와 다시 동맹을 맺고 신라와 계속 전쟁을 벌였다.
659년 나당 동맹이 체결된 뒤 660년 신라 태종무열왕이 당나라 군대와 연합해 백제를 침공했고, 백제의 수도였던 사비가 함락되면서 백제는 멸망했다. 이후 3년 간 백제 부흥운동이 이어졌으나 백제가 패배하면서 부흥 운동도 막을 내렸다. 백제는 일찍이 한강 유역에 도읍을 두었기에 중국과 바로 교역을 할 수 있었으며 요서와 탐라 지역에도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백제의 문화는 삼국의 문화 중 가장 유려하고 미학적 예술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백제 금동대향로 등 백제의 문화유산은 대한민국 역사학계 및 예술계에서 그 우수성과 미학성으로 찬사를 받고 있다. 또한 2015년 7월 4일에는 유네스코에서 백제의 옛 수도인 공주시와 부여군, 그리고 백제 유적이 있는 익산시의 백제 시기 문화유적지를 묶어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지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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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 한눈에
기원전 18년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로마 제국(기원전 27년), 콜로세움 개관(82년), 바스(43년)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는 바로 앞서 마한 왕이 죽자, 신라의 신하들이 마한을 정벌할 것을 권하나 혁거세…(기원전 19년), 뒤이어 3월, 백제 온조왕이 족부 을음을 우보로 삼았다(기원전 17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주요 사건은 고대 문명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다.
3D 지구본에서 보기 → 나무위키위키백과같은 시기, 다른 지역에서는
같은 지역의 앞뒤 사건
- 신라 기원전 57년
- 신라 건국 기원전 57년
- 신라 박혁거세 거서간이 금성에 궁궐을 세우다 기원전 32년
- 낙랑이 신라를 침범하였으나 도덕의 나라라 하여 스스로 물러갔다 기원전 28년
- 신라가 마한에 사신 호공을 보냈는데 기원전 20년
- 마한 왕이 죽자, 신라의 신하들이 마한을 정벌할 것을 권하나 혁거세… 기원전 19년
- 삼국 시대 기원전 18년
- 3월, 백제 온조왕이 족부 을음을 우보로 삼았다 기원전 17년
- 백제, 위례성에서 한산으로 도읍을 옮김 기원전 14년
- 동옥저 사신이 신라에 와서 좋은 말 20필을 바치면서 말하기를 “저희… 기원전 5년
- 백제, 남한산으로 한성 천도 기원전 5년
- 가야 4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