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교회 대분열
9월 20일, 교황 우르바노가 비판적 태도를 보이자 불만을 품은 다수 추기경이 폰디에서 클레멘스 7세를 대립교황으로 선출하고 아비뇽에 맞교황청을 세웠다. 이것이 서방 교회 대분열이다. (영어 위키백과 번역)
서방교회 대분열(라틴어: Magnum schisma occidentale)은 14세기 아비뇽 유수가 종료된 직후에 로마와 아비뇽에 두개의 합법적인 교황청과 두 명의 정통 교황이 존재하게 되면서 서방교회가 분열하고 서유럽 전역에 걸쳐 대혼란이 펼쳐졌던 사건을 말한다. 교황 우르바노 6세와 프랑스 출신 추기경들 사이에서 발생한 갈등 끝에 추기경들이 기존 콘클라베에 대해 무효를 선언한 뒤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면서 촉발되었다.
로마와 아비뇽의 교황은 자신에게 정통성이 있다고 서로 주장하였으며 서유럽 각국은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지지하는 교황을 달리하였다. 두 명의 교황이 인사권을 남발하자 각 지역 교회는 두 명의 대주교, 두 명의 수도원장, 두 명의 본당신부를 갖게 되었다. 이들은 서로 상대방을 파문하였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서유럽의 모든 성직자와 신자들이 파문 상태에 놓이게 됐다. 교회와 수도원과 가정의 평신도들까지 지지하는 교황이 달랐으며 이로 인해 유럽사회는 일대 대혼란이 펼쳐졌다.
사태를 수습하고자 피사공의회(1409년)가 소집되어 두 교황을 폐위하고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였으나 로마와 아비뇽 교황이 공의회의 결정을 인정치 않으므로 인해 사상 초유에 합법적인 3명의 정통 교황이 존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러한 혼란은 최종적으로 콘스탄츠 공의회(1414~1418)에서 해결되었으며 이로 인해 공의회 수위설이 부상하면서 교황의 권위는 약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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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 한눈에
1378년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명나라(1368년), 조선(1392년), 티무르 제국(1370년)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는 바로 앞서 라구사 공화국(1358년), 뒤이어 피렌체 공의회(1431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주요 사건은 중세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다.
3D 지구본에서 보기 → 나무위키위키백과같은 시기, 다른 지역에서는
같은 지역의 앞뒤 사건
- 나폴리 왕국 1282년
- 피렌체 대성당 개관 1296년
- 사피엔차 로마 대학교 설립 1303년
- 베키오 다리 1335년
- 두칼레 궁전 개관 1340년
- 피사 대학교 설립 1343년
- 흑사병 유럽 상륙 1347년
- 라구사 공화국 1358년
- 피렌체 공의회 1431년
- 바티칸 도서관 설립 1450년
- 피티궁 개관 1458년
- 바티칸 박물관 개관 150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