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주원장, 원나라를 중국에서 축출하고 한족(漢族)의 왕조 명나라를 건국.
대명국(중국어 간체자: 大明国, 정체자: 大明國, 병음: Dà Míng Guó 다밍궈[*]) 또는 대명(중국어 정체자: 大明, 병음: Dà Míng 다밍[*]), 약칭 명(중국어 정체자: 明, 병음: Míng 밍[*])은 1368년부터 1644년까지 존속한 중국의 통일 황조로, 원의 한족계 홍건도 반란군 수장 주원장이 원을 중국에서 몰아내어 멸망시키고 세운 마지막 한족 황조 국가이기도 하다.
홍무제와 영락제의 재위 시기에 거대한 운하와 수로가 건설되어 농업 생산력이 크게 향상되었으나 만력제, 천계제 등과 같은 무능한 군주들이 나오며 급격하게 몰락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이자성의 난이 일어나고 후금의 거듭되는 침략으로 쇠퇴했다. 이후 명나라의 황족과 유신(남은 신하)들은 남쪽으로 후퇴하여 남명 정권을 세웠으나, 고질적인 내분과 무능함으로 결국 1662년 경 청나라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홍무제는 당시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었던 농촌 지역들을 발전시켜 엄격한 사회 제도 내에 편입시키고자 하였다. 이를 통하여 군사력 증강을 꾀하였던 것이다. 이같은 정책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명나라는 백만 명에 달하는 상비군을 소유하고 난징에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군항을 짓는 등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하게 되었다. 홍무제는 원나라를 교훈삼아 환관들, 그리고 재력가들의 영향력을 최대한 줄이고자 하였고, 장자 계승 원칙을 확립함과 동시에 후대의 황제들을 위하여 황명조훈을 집필하여 절대적인 황권을 구축하려 노력하였다. 허나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건문제가 정난의 변으로 인하여 쫒겨나고 연왕 주체가 영락제로 즉위하며 점차 이같은 장자 계승 원칙은 점차 무너지게 되었다. 영락제는 베이징으로 수도를 천도하였고, 자금성을 지었으며 대운하를 정비하였고 과거제를 재시행하였다. 그는 환관들을 주로 등용하여 신권을 잡고 있던 유교 사대부들을 견제하려 들었고, 결과적으로 환관들의 권력이 상대적으로 강화되었다. 이 환관들 중에서는 정화의 원정으로 유명한 환관 정화도 있었다. 정화는 인도양을 건너 아라비아와 동아프리카까지 다녀오며 명나라의 권위를 해외에 과시한 업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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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 한눈에
1368년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흑사병(1346년), 백년 전쟁(1337년), 빈 대학교 설립(1365년)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는 바로 앞서 홍건적의 개경 점령(1361년), 뒤이어 명나라 사신 자와 도착(1371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주요 사건은 중세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다.
3D 지구본에서 보기 → 나무위키위키백과같은 시기, 다른 지역에서는
- 흑사병 1346년
- 백년 전쟁 1337년
- 빈 대학교 설립 1365년
-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설립 1386년
- 카를로바 대학교 설립 1348년
- 조선 1392년
- 티무르 제국 1370년
- 칼마르 동맹 1397년
같은 지역의 앞뒤 사건
- 홍건적의 개경 점령 1361년
- 명나라 사신 자와 도착 1371년
- 명나라 이갑제 도입 1371년
- 명나라 하나라 정복 개시 1371년
- 홍무제 과거 시험 중단 1373년
- 우왕 명 연호 채택과 책봉 요청 1377년
- 홍무제 통정사 신설 1377년
- 호유용 처형과 대숙청 1380년
- 홍무제 재상제 폐지 1380년
- 명나라 옛 대리국 지역 병합 1381년
- 명나라가 철령위 설치를 통보함 1388년
- 명나라의 정화가 317척의 배를 이끌고 첫 원정에 나서다 140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