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슬라브 위원회
7월 20일, 전후 유고슬라비아 왕국 수립의 길을 연 코르푸 선언이 유고슬라브 위원회와 세르비아 왕국 사이에 서명되었다. (영어 위키백과 번역)
유고슬라브 위원회(크로아티아어: Jugoslavenski odbor, 슬로베니아어: Jugoslovanski odbor, 세르비아어: Југословенски одбор Jugoslovenski odbor)는 제1차 세계 대전 시기에 활동한 비선출직 임시 위원회이다. 이 위원회는 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 남슬라브족이 거주하는 영토를 분리하여 세르비아 왕국과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망명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보스니아계 세르브인 정치인과 정치 활동가들로 구성되었다. 이 단체는 1915년에 공식적으로 결성되었으며,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해체와 뒤이어 개칭된 유고슬라비아의 전신인 슬로벤인 크로아트인 세르브인국이 수립된 직후인 1919년에 마지막 회의를 열었다. 유고슬라브 위원회는 크로아티아인 변호사 안테 트룸비치가 의장을 맡아 이끌었으며, 1916년까지는 크로아티아인 정치인 프라뇨 수필로가 부의장을 역임했다.
유고슬라브 위원회 위원들은 통합 방식, 희망하는 정부 체제, 제안된 통합 국가의 헌법과 같은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위원회 구성원 대다수는 다양한 형태의 유고슬라브주의를 지지했으며, 중앙집권적 국가 또는 새로운 국가를 구성하는 영토가 어느 정도의 자치권을 유지하는 연방제를 옹호했다. 위원회는 크로아티아 디아스포라의 기부금과 니콜라 파시치가 이끄는 세르비아 왕국 정부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았다.
유고슬라브 위원회 대표들과 세르비아 정부는 1917년 그리스의 케르키라섬에서 만나 남슬라브족의 통합 방안을 논의하고 향후 통합 국가 헌법의 요소를 담은 코르푸 선언을 발표했다. 전쟁 말기인 1918년 제네바에서 추가 회의가 열렸다. 이 논의의 결과로 통합 국가의 국가연합 헌법을 기술한 제네바 선언이 작성되었다. 세르비아 정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선언을 부인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가 해체되면서 형성된 슬로벤인 크로아트인 세르브인국은 유고슬라브 위원회를 국제 사회에서의 대표자로 대우했다. 위원회는 곧 세르비아와 통합하라는 압박을 받았고, 이전 선언들을 무시하는 방식으로 통합을 진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위원회는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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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 한눈에
1917년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중화민국(1912년), 소련(1922년), 제1차 세계 대전(1918년)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는 바로 앞서 사라예보 사건(1914년), 뒤이어 유고슬라비아(1918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주요 사건은 근대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다.
3D 지구본에서 보기 → 나무위키위키백과같은 시기, 다른 지역에서는
- 중화민국 1912년
- 소련 1922년
- 제1차 세계 대전 1918년
- 러시아 혁명 1917년
- 10월 혁명 1917년
-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1917년
- 러시아 내전 1917년
-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1920년
같은 지역의 앞뒤 사건
- 오스트리아-헝가리 1867년
- 불가리아 왕국 1908년
- 몬테네그로 왕국 1910년
- 발칸 전쟁 1912년
- 제1차 발칸 전쟁 1912년
- 제2차 발칸 전쟁 1913년
- 사라예보 사건 1914년
- 유고슬라비아 1918년
- 독일계 오스트리아 공화국 1918년
- 헝가리 평의회 공화국 1919년
- 유고슬라비아 왕국 1929년
- 1956년 헝가리 혁명 195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