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모로코 위기
독일이 자국국민 보호를 구실로 모로코의 아가디르 항에 전함 '판터호'를 파견, 제2차 모로코 위기 발생되었다.
아가디르 위기(Agadir Crisis), 아가디르 사건, 또는 제2차 모로코 위기는 1911년 7월 프랑스 육군의 대규모 병력이 모로코 내륙에 배치되고, 독일의 포함 SMS 판터호가 모로코의 대서양 항구인 아가디르로 파견되면서 촉발된 짧은 위기이다. 독일 제국은 프랑스 제3공화국의 팽창에 반대하지는 않았으나 독일에게 "영토적 보상"을 요구했다. 베를린은 전쟁을 위협하며 포함을 보내고 독일 내셔널리즘을 자극했다. 베를린과 파리 사이의 협상은 1911년 11월 4일에 해결되었는데 프랑스는 프랑스령 콩고에서 독일령 카메룬으로 영토를 양도하는 대가로 모로코를 보호령으로 삼았다.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에서는 당시 영국의 재무장관이었던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가 1911년 7월 20일, H. H. 애스퀴스 총리와 에드워드 그레이 외무장관의 동의를 얻어 비간섭주의가 다수인 영국 내각을 우회하여 맨션 하우스에서 독일의 움직임을 참을 수 없는 굴욕이라 비난하는 극적인 연설을 했다. 전쟁의 기운이 감돌자 독일은 물러섰고, 베를린과 런던 사이의 관계는 악화되었으며 영국은 프랑스에 더 가까워졌다. 베를린은 굴욕감을 느꼈으며 동맹국은 적고 잠재적 적국이 많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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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 한눈에
1911년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중화민국(1912년), RMS 타이타닉(1909년),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1915년)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는 바로 앞서 프랑스-모로코 파리 협정(1910년), 뒤이어 프랑스령 모로코(1912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주요 사건은 근대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다.
3D 지구본에서 보기 → 나무위키위키백과같은 시기, 다른 지역에서는
- 중화민국 1912년
- RMS 타이타닉 1909년
-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 1915년
- 1912년 하계 올림픽 1912년
- 퉁구스카 폭발사건 1908년
- 발칸 전쟁 1912년
- 동맹국 (제1차 세계 대전) 1914년
- 제1차 발칸 전쟁 1912년
같은 지역의 앞뒤 사건
- 제1차 모로코 위기 1905년
- 알헤시라스 회담 1906년
- 군함 장 바르 침몰 1907년
- 프랑스-모로코 파리 협정 1910년
- 리프 전쟁 1911년
- 프랑스령 모로코 1912년
- 엘헤리 전투 1914년
- 리프 공화국 1921년
- 위다드 AC 1937년
- 카사블랑카 회담 1943년
- 모로코 1955년
- 1960년 아가디르 지진 196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