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플라톤주의
그리스 철학자 플로티노스가 고르디아누스 3세 살해에 따른 유혈 사태를 피해 안티오키아로 갔다. 로마로 돌아와 신플라톤주의 학교를 세우고 포르피리오스 등 제자를 모았다. (영어 위키백과 번역)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는 3세기 이후, 플로티노스의 《엔네아데스》를 기초로 전개해 오는 사상 체계로서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스토아 학파 등 고대 여러 학파의 사상을 종합화하기 위해 성립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이데아계-현상계(現象界)라고 하는 플라톤적 양분론을 계승하고 있으며, 특히 전자를 세분화하여 전 존재를 계층적으로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 특색이다. 그러나, 이데아계와 현상계가 독립적으로 나눠져있다는 이원론적 세계관은 많이 희석된 상태로 존재하며, 《엔네아데스》의 규정성에 따라 일자(一者)에 의한 일원론적 세계관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플라톤주의와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신플라톤주의의 학파로서의 존재는 529년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에 의한 이교도(異敎徒)의 학원폐쇄령과 함께 막을 내리지만, 사상 자체는 중세·근세의 철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르네상스시대에 있어 플라톤주의 부흥이라 일컬어지는 것과 근세 말기 과학적 방법론 도입에 관한 실제 내용은 신플라톤주의 색채를 진하게 갖는 것이다.
신플라톤주의는 중동 및 소아시아 지역에 걸쳐 존재했던 고대 그리스 철학을 일원론적 통일성에 기반하여 해석했다. 마음·정신·물질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신플라톤주의 사상가들은 물질과 정신이 일자(一者) 파생의 만유이자, 그 구성물이라는 논리를 전개한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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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 한눈에
244년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굽타 제국(320년), 사산 제국(224년), 삼국 시대 (중국)(220년)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는 바로 앞서 바르 코크바의 난(132년), 뒤이어 에데사 전투(260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주요 사건은 고대 문명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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