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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1918년 · 문명·국가 · 위도 52.08, 경도 23.66

제1차 세계 대전: 소비에트 연방이 동맹국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맺고 전쟁을 중단하다.

시점1918년 3월 3일장소브레스트상위 사건제1차 세계 대전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독일어: Friedensvertrag von Brest-Litowsk, 러시아어: Бре́стский мир, Брест-Лито́вский (Брестский) мирный догово́р)은 1918년 3월 3일 소비에트 러시아의 볼셰비키 정권과 동맹국(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불가리아 왕국, 오스만 제국) 사이에 맺어진 평화조약으로, 이 조약의 결과 러시아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이탈하고 동부전선이 마무리되었다. 독-러 단독 강화 조약이라고도 불린다. 조약이 조인된 곳이 폴란드의 브레스트-리토프스크(폴란드어: Brześć Litewski 브제시치 리테브스키[*]; 당시 러시아령으로 오늘날의 브레스트)였기에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이라 부른다. 볼셰비키 정권은 독일군과 오스트리아군의 진격을 더 이상 막아낼 여력이 없었기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이 조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조약의 결과 소비에트 러시아는 러시아 제국 시절 삼국 협상으로 맺어진 모든 합의에 대한 불이행을 천명하게 되었다.

조약의 내용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소비에트 러시아는 독일에게 발트 3국을, 오스만 제국에게 남캅카스의 카르스 주를 반환한다. 또한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한다. 또한 60억 금 마르크를 전쟁 배상금으로 토해낸다. 독일 장군참모본부가 내놓은 이러한 요구사항은 너무나 혹독해서 독일측 협상 담당자들마저 놀랄 지경이었다. 폴란드 입헌왕국의 처우는 조약에 명시되지 않았는데, 이는 독일이 폴란드를 대표할 수 있는 집단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폴란드인들은 저항했다. 1년 뒤인 1919년 베르사유 조약이 맺어지고 독일인들이 베르사유 조약의 가혹성을 성토하자 연합국 및 연합국의 역성을 드는 역사학자들은 베르사유는 브레스트-리토프스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응수했다.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하에 발트 3국은 독일 황제를 받드는 제후국이 되었다.

1918년 11월 독일이 연합국에게 항복하자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은 사실상 파기되었다. 그러나 조약 결과 독일과 정전하게 된 볼셰비키는 러시아 내전에 집중할 수 있게 되어 결과적으로 내전에 승리했으며, 이후 폴란드,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 등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으로 인해 상실한 러시아 제국 영토의 수복을 천명하게 된다.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소비에트 연방은 핀란드와 폴란드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을 모두 재합병하고 폴란드는 위성국으로, 핀란드는 중립국으로 만듦으로써 그 목표를 대부분 달성한다.

출처: 위키백과 (CC BY-SA 4.0) · 위키백과 2026-03-03 기준

맥락 한눈에

1918년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소련(1922년), 제1차 세계 대전(1918년), 러시아 혁명(1917년)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는 바로 앞서 타넨베르크 전투 (1914년)(1914년), 뒤이어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1919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주요 사건은 근대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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