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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톨베리 납치 사건

1930년 · 문명·국가 · 위도 60.19, 경도 25.01

10월 14일, 핀란드 초대 대통령 카를로 유호 스톨베리 부부가 극우 라푸아 운동 단원들에게 집에서 납치되었다가 무사히 풀려났다. (영어 위키백과 번역)

시점1930년 10월 14일장소쿨로섬국가핀란드

스톨베리 납치사건(핀란드어: Kaarlo Juho Ståhlbergin kyyditys 카를로 유호 스톨베르긴 퀴디튀스[*])은 1930년 10월 14일에 핀란드의 자생적 교권파시즘 세력인 라푸아 운동 소속 극우 깡패들과 군인들이 초대 공화국 대통령 카를로 유호 스톨베리를 납치한 사건이다. 스톨베리 전 대통령 부부는 헬싱키 쿨로섬에서 동부국경 요엔수까지 끌려갔다가 풀려났다. 이 사건은 라푸아 운동의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혔다.

이 납치사건은 당시 엽병중령 에로 쿠사리가 미코 야스카리에게 내린 명령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스톨베리 납치사건은 아주 뜻밖의 일은 아니었는데, 당대 우익 언론들이 우익 행동주의를 강력히 반대했던 스톨베리를 겨냥해 용공분자라고 대대적인 악선전을 펼쳐왔기 때문이다. 수사중앙경찰 수사에 따르면 이 납치사건은 약 1년간 준비된 것이었다고 한다. 원래 계획과 달리 다음 이송수단이 준비되지 않아 스톨베리 부부는 요엔수에 버려졌고, 10월 16일 헬싱키로 돌아왔다. 10,000 명의 시민들이 모여 전 대통령 부부를 환영했다.

이 사건으로 라푸아 운동의 대외적 이미지는 큰 오점이 남았지만, 11월 11일 반공법이 통과되면서 그들이 내세웠던 핵심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성공했다. 쿠사리의 상관이었던 쿠르트 마르티 발레니우스 장군은 이 사건으로 군 경력이 파탄나서 예편했다. 그러나 발레니우스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쿠사리는 징역 1년, 야스카리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출처: 위키백과 (CC BY-SA 4.0) · 위키백과 2026-07-27 기준

맥락 한눈에

1930년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대공황(1929년), 미나스제라이스 연방대학교 설립(1927년), 만주국(1932년)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는 바로 앞서 크론시타트 반란(1921년), 뒤이어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1940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주요 사건은 근대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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