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디아스포라에서 이스라엘 건국까지
왜 이스라엘은 2천 년이 지나서도 그 땅을 되찾으려 했을까. 로마 제국 시기 팔레스타인을 떠난 유대인은 북아프리카와 유럽 곳곳에 흩어져 살며(디아스포라) 학문과 상업을 일구었다.
그러나 중세에는 십자군 시기의 학살과, 1290년 잉글랜드를 시작으로 한 서유럽의 잇따른 추방을 겪었고, 근대에 들어서도 반유대주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래 네 장면은 그 박해가 어떻게 이스라엘 건국으로 이어졌는지를 보여 준다.
1. 드레퓌스 사건 1894년
프로이센에 패한 뒤 반독일·반유대 감정이 높던 프랑스에서 유대계 장교 드레퓌스가 간첩 누명으로 종신형을 받았다. 진범이 드러난 뒤에도 군이 진실을 덮자 에밀 졸라 등 지식인이 들고일어났다. 이 사건을 지켜본 헤르츨이 시오니즘 운동을 시작한다.
2. 제1차 시온주의자 대회 1897년
드레퓌스 사건에 충격을 받은 테오도어 헤르츨이 스위스 바젤에서 연 대회.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세우자는 시오니즘이 이때부터 조직적인 운동이 되었고, 51년 뒤 이스라엘 건국으로 실현된다.
3. 홀로코스트(최종 해결책) 1941년
나치 독일이 유럽 유대인의 체계적 말살을 결정한 계획. 홀로코스트로 약 600만 명이 희생되었고, 박해를 피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대거 이주하며 이스라엘 건국의 배경이 된다.
4. 이스라엘 건국 선언 1948년
영국이 철수한 직후인 1948년 5월 14일, 유대인 지도자들이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했다. 1897년 바젤 대회에서 시작된 시오니즘의 목표가 실현된 날이자, 곧바로 1차 중동전쟁이 시작된 날이다.
맺으며
1897년 바젤에서 시작된 시오니즘은 51년 만에 이스라엘 건국으로 실현되었다. 그러나 한 민족의 귀환은 그 땅에 살던 다른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상실의 시작이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서방과 중동, 3천 년 충돌의 흐름'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