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사 탐색기문명·국가

아카키우스 분열

484년 · 문명·국가 · 위도 41.89, 경도 12.51

교황 펠릭스 3세가 제논의 헤노티콘 반포에 관여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아카키오스와 알렉산드리아의 베드로 3세를 파문했다. 로마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의 분열은 519년에야 해소되었다. (영어 위키백과 번역)

기간484년 ~ 519년 3월 24일참여교황 펠릭스 3세, 아나스타시우스 1세, 제논

아카키우스 분열은 484년 시작되어 거의 35년을 끌었던 로마 교회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의 분열을 말한다.

단성론으로 비잔티움 제국의 사회와 교회가 혼란을 거듭하자 비잔티움 황제 제논과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아카키우스는 482년 〈헤노티콘〉(Henotikon)이라는 문서를 함께 발표하여 양측을 중재하려했다. 〈헤노티콘〉은 (그리스어로 '통합칙령'이라는 뜻)으로 325년의 제1차 니케아 공의회와 381년의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의 결정사항들을 실천하기 위한 문서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은 인정했지만, 451년의 칼케돈 공의회에서 확인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부분은 모호하게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아카키우스는 모든 비잔티움 제국의 기독교 공동체에게 자신이 발표한 〈헤노티콘〉에 대한 동의를 받아내려고 애썼고 어느 정도 동방 교회에서는 평화를 가져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로마 교회에 자문을 구하는 것을 소홀히 한 결과 교황 심플리치오와 그의 후임자 교황 펠릭스 3세의 분노를 샀다.

출처: 위키백과 (CC BY-SA 4.0) · 위키백과 2025-04-04 기준

맥락 한눈에

484년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웨일스(500년), 치첸이트사(455년), 데르벤트(438년)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는 바로 앞서 서로마 제국의 몰락(476년), 뒤이어 동고트 왕국(493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주요 사건은 고대 문명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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