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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보어 전쟁

1899년 · 전쟁 · 위도 -29.00, 경도 24.00

제2차 보어 전쟁: 대영 제국이 오라녀 자유국을 병합하다.

기간1899년 10월 11일 ~ 1902년 5월 31일장소남아프리카 공화국국가남아프리카 공화국참여대영제국, 오라녀 자유국, 트란스발 공화국, 제3대 솔즈베리 후작 로버트 개스코인세실, 조지프 체임벌린, 알프레드 밀너

제2차 보어 전쟁(영어: Second Boer War, 아프리칸스어: Tweede Boereoorlog)은 1899년 10월 11일에 발발한 네덜란드계 보어인이 세운 트란스발 공화국 및 오렌지 자유국(Oranje Vrystaat)의 7만 연합군과 영국 45만 군대 사이의 전쟁으로, 1902년 5월 31일에 영국의 승리로 종결되었다. 영국이 승리함에 따라 트란스발 공화국과 오렌지 자유국의 영토는 최종적으로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위트워터스란드 골드러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대규모 "외국인"의 유입을 초래했으며, 대부분은 케이프 식민지에서 온 영국인이었다. 그들은 투표할 수 없었고, "환영받지 않는 방문객"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케이프 식민지의 영국 당국에 항의했다. 1899년 6월 블룸폰테인 회의에서 협상이 실패하자, 10월에 보어의 비정규군과 민병대가 영국 식민지 정착지를 공격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보어는 레이디스미스, 킴벌리, 마페킹을 포위하고 콜렌소, 매거스폰테인, 스톰버그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영국군의 병력이 남아프리카로 증원되었으나 보어에 대한 공격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영국의 상황은 총사령관 레드버스 불러 장군이 로버츠 경과 키치너 경으로 교체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18만 명의 원정군을 이끌고 1900년 초에 포위된 도시들을 구출하고 보어 공화국을 침공했다. 보어군은 그들이 이처럼 대규모 군대에 저항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영국군이 양 공화국과 그 수도인 프리토리아와 블룸폰테인을 점령하도록 하면서 전면전을 피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인 폴 크뤼거를 포함한 보어 정치인들은 도망가거나 숨어버렸다. 대영제국은 1900년에 두 공화국을 공식적으로 병합했다. 영국에서는 솔즈베리 경이 이끄는 보수당 내각이 영국군의 성공을 이용해 조기 총선을 실시했는데, 당시 관찰자들은 이를 "카키 선거"라고 불렀다. 그러나 보어 전사들은 산으로 숨어들어 게릴라전을 시작했으며, 이들은 "비터렌더스"로 알려지게 되었다. 루이 부어타, 얀 스뮈츠, 크리스티안 데 베트, 쿠스 데 라 레이와 같은 장군들이 이끄는 보어 게릴라군은 2년 동안 기습 공격과 매복을 통해 영국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다.

출처: 위키백과 (CC BY-SA 4.0) · 위키백과 2026-08-24 기준

맥락 한눈에

1899년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엑스선(1895년), 1896년 하계 올림픽(1896년), 1900년 하계 올림픽(1900년)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는 바로 앞서 남아프리카 공화국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1891년), 뒤이어 오렌지강 식민지(1902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주요 사건은 근대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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