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 전쟁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이끄는 4만2천명의 프로이센군, 2만9천명의 오스트리아, 6천명의 헤센 군대가 프랑스 국경을 넘었다. 이로서 프랑스 혁명 전쟁이 개시되었다.
프랑스 혁명 전쟁(프랑스어: Guerres de la Révolution française)은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비롯된 일련의 대규모 군사 충돌로, 1792년부터 1802년까지 지속되었다. 이 전쟁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영국, 신성 로마 제국, 프로이센, 러시아 제국 및 여러 국가들과의 대립으로 전개되었다. 전쟁은 제1차 대프랑스 동맹(1792~1797)과 제2차 대프랑스 동맹(1798~1802)의 두 시기로 나뉜다. 처음에 전쟁은 유럽 내에 국한되었으나, 전투는 점차 전 세계적인 양상을 띠게 되었다. 프랑스는 10년에 걸친 지속적인 전쟁과 외교 전략을 통해 이탈리아반도, 저지대 국가, 라인란트 지역을 점령하였으며, 대규모 징병제를 통해 전 유럽을 상대로 완전 동원된 강력한 군사력을 구축했다. 이러한 승리로 프랑스는 점령지를 통해 혁명 원칙을 유럽 전역에 확산시킬 수 있었다.
이미 1791년부터 유럽의 군주국들은 프랑스 혁명과 그 혼란에 대해 격분하였고, 루이 16세를 지원하거나 혼란을 기회로 삼기 위해 개입할지를 고려했다. 오스트리아는 프랑스 국경에 병력을 배치하고 프로이센과 함께 필니츠 선언을 발표하여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해가 가해질 경우 심각한 결과가 따를 것이라 경고했다. 오스트리아가 병력을 철수하지 않고 무력 사용 가능성을 철회하지 않자, 프랑스는 1792년 봄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에 전쟁을 선포했다. 두 나라는 공동 침공을 감행했지만, 프랑스는 9월 발미 전투에서 이들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 승리는 국민공회가 군주제를 폐지하도록 고무시켰다. 이후 프랑스 혁명군은 연이은 승리를 거두었으나, 1793년 봄 네르빈덴 전투에서 패배하며 흐름이 꺾였다. 이후에도 연패가 이어졌고, 이러한 위기는 자코뱅의 집권과 국가 통합을 위한 공포정치의 도입으로 이어졌다.
1794년 들어 프랑스의 전황은 급격히 개선되었으며, 플뢰뤼스 전투에서 오스트리아 및 네덜란드군에, 카프마니 전투에서는 스페인군에 승리하였다. 1795년에는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와 네덜란드 공화국을 점령했고, 바젤 조약을 통해 스페인과 프로이센을 전쟁에서 이탈시켰다. 무명에 가까웠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1796년 4월 이탈리아에서 첫 군사 작전을 개시했다. 1년이 채 되지 않아 나폴레옹은 프랑스군을 이끌고 합스부르크군을 거의 전멸시키고 이탈리아반도에서 축출하였으며, 거의 모든 전투에서 승리하고 15만 명의 포로를 사로잡았다. 프랑스군이 비엔나로 진격하자 오스트리아는 평화를 요청했고, 1797년 10월 17일 캄포포르미오 조약을 체결하면서 제1차 동맹전이 종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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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 한눈에
1792년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천왕성(1781년), 미국 의회도서관 설립(1800년), 네덜란드령 동인도(1800년)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는 바로 앞서 샤를로텐부르크성 개관(1791년), 뒤이어 나폴레옹 전쟁(1803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주요 사건은 근세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다.
3D 지구본에서 보기 → 나무위키위키백과같은 시기, 다른 지역에서는
- 천왕성 1781년
- 미국 의회도서관 설립 1800년
- 네덜란드령 동인도 1800년
- 미마스 (위성) 1789년
- 권리장전 (미국) 1791년
- 미국 육군사관학교 설립 1802년
-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채플힐 설립 1789년
- 루이지애나 매입 1803년
같은 지역의 앞뒤 사건
- 7년 전쟁 1756년
- 폴란드 분할 1772년
- 미국 독립 전쟁 1775년
- 샤를로텐부르크성 개관 1791년
- 1791년 5월 3일 헌법 1791년
- 나폴레옹 전쟁 1803년
- 아우스터리츠 전투 1805년
- 작센 왕국 1806년
- 바르샤바 공국 1807년
-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설립 1809년
- 라이프치히 전투 1813년
- 바르샤바 대학교 설립 18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