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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데시야스 조약

1494년 · 문명·국가 · 위도 41.50, 경도 -5.00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간에 토르데시야스 조약 체결

시점1494년 6월 7일장소토르데시야스국가포르투갈 왕국, 스페인 제국

토르데시야스 조약(스페인어: Tratado de Tordesillas, 포르투갈어: Tratado de Tordesilhas, 영어: Treaty of Tordesillas)은 스페인과 포르투갈간의 유럽 대륙외 지역에 대한 영토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1494년 6월 7일 스페인의 토르데시야스에서 맺은 조약이다. 대서양 및 태평양 상에 새로운 분계선을 정한 기하학적 영토 분할 조약이며, 영토 분쟁을 평화롭게 마무리 지은 몇 안 되는 사례 중 하나다.

경계선은 카보베르데섬 서쪽 서경 46도 지점을 기준으로 남북 방향으로 그린 일직선이다. 카보 베르데스 제도에서 370레구아 떨어진 곳에서 그은 선을 기준으로하여 동쪽으로는 모두 포르투갈이, 서쪽 지역은 스페인이 차지하기로 하였다. 포르투갈은 이 조약으로 인해 인도산 후추를 독점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유리하였다. 또한 오늘날 남미 대륙에서 브라질만이 유일하게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게 된 것도 이 조약으로 인한 것이다.

이 조약을 체결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콜럼버스가 1492년에 서회항로 개척을 위해 항해를 하면서 지난 1479년에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이에 체결한 알카소바스 조약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카스티야 왕위계승전을 종결지은 알카소바스 조약을 살펴보면, 스페인 선박은 북위 26도 이남 지역의 바다를 항해할 수 없으며 이 지역에서 새로 발견되는 모든 땅의 지배나 소유권은 포르투갈에 있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콜럼버스는 항해중에 이 조약을 위반했을뿐만 아니라 그가 발견한 섬들의 위치가 북위 26도 이남 지역에 있었다. 포르투갈 왕 주앙 2세가 스페인에 강력히 항의하면서 영토분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교황이 중재안을 제시했으나 스페인 출신 교황은 자신의 조국인 스페인에게 매우 유리하고 편파적인 중재안을 제시하였기에 주앙 2세가 불복하였다. 이에 양국은 직접 협상을 진행하여 새로운 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출처: 위키백과 (CC BY-SA 4.0) · 위키백과 2025-09-24 기준

맥락 한눈에

1494년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산크리스토발데라라구나(1496년), 코펜하겐 대학교 설립(1479년), 웁살라 대학교 설립(1477년)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는 바로 앞서 그라나다 전쟁(1492년), 뒤이어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대학교 설립(1495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주요 사건은 근세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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