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사 탐색기전쟁

파리 코뮌

1871년 · 전쟁 · 위도 48.86, 경도 2.35

파리 코뮌 공안위원회 설립.

기간1871년 3월 18일 ~ 1871년 5월 28일장소파리국가프랑스상위 사건Insurrectionary communes in France in 1870-1871

파리 코뮌(Paris Commune, 1871년 3월 18일 ~ 5월 28일)이란 파리 시민들이 세운 사회주의 자치 정부를 말한다. 노동자 계급이 세운 세계 최초의 민주적이고 혁명적인 자치 정부라는 평가가 있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주의 정책을 실행에 옮겼다. 비록 존속기간이 2개월이라는 짧은기간에 불과했지만 이들의 활동은 사회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프랑스 제5차 혁명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1870~71) 패배로 출범한 프랑스 제3공화국 정부를 장악한 왕당파는 민의를 무시하고 왕정복고를 꾀하며 굴욕적인 조건으로 독일과 종전협정을 체결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 하였다. 또한 파리 시민과 노동자들로 구성된 국민방위군 소유의 대포를 압수하며 이들을 강제 해산시키려하였는데 이에 반발한 시민들이 자체선거를 통해 자치정부(파리코뮌)을 수립하였다. 리옹, 마르세유등 다른 도시에서도 자치정부(코뮌)를 수립하였지만 조기에 진압됨에 따라 이들과 연대하지 못하고 고립되었다. 하지만 파리코뮌은 매우 질서 있고 안정적으로 자치가 이루어졌다.

코뮌은 2달 동안 파리를 통치하면서 19세기의 여러 사상과 학파들이 혼합된 진보적이고 반종교적인 사회주의 체제를 지향하는 정책들을 추진했다. 그 가운데서 신앙과 정치의 분리, 자치 정책, 임대료 면제, 아동 노동 폐지, 노동자 자주 경영 등이 이루어졌다. 코뮌은 또한 파리의 모든 가톨릭 교회를 폐쇄하고 잠시 학교를 문닫게 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는 페미니스트, 공산주의, 사회민주주의(개혁주의+혁명주의), 무정부주의와 같이 다양한 좌익 사회주의 계열의 사상들이 코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출처: 위키백과 (CC BY-SA 4.0) · 위키백과 2026-03-15 기준

맥락 한눈에

1871년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남북 전쟁(1865년), 옐로스톤 국립공원(1872년), 포보스 (위성)(1877년)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는 바로 앞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1870년), 뒤이어 파리 정치 대학 설립(1872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주요 사건은 근대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다.

3D 지구본에서 보기 → 나무위키위키백과

같은 시기, 다른 지역에서는

같은 지역의 앞뒤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