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항공 11편 테러 사건
9·11 테러: 알 카에다의 테러리스트들이 미국 여객기 4대(아메리칸 항공 11편 테러 사건,유나이티드 항공 175편 테러 사건,아메리칸 항공 77편 테러 사건,유나이티드 항공 93편 테러 사건)를 납치해 뉴욕 맨해튼의 세계 무역 센터와 충돌시켰으며, 워싱턴 D.C.의 미국 국방부, 펜실베이니아주에 추락시키다. 이 사건으로 세계 무역 센터가 붕괴되고 미국 국방부의 건물인 펜타곤이 부분 붕괴되어 약 3,000여 명이 사망하였다.
아메리칸 항공 11편 테러 사건(영어: American Airlines Flight 11 Terror Incident, AA11)은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 소속 테러리스트 5명이 미국 국내선 항공편 '아메리칸 항공 11편'을 납치하여 9·11 테러를 일으킨 사건이다. 이 테러의 주도범인 모하메드 아타는 항공기를 뉴욕 세계 무역 센터 북쪽 타워에 충돌시켰다. 그로 인해 탑승객 92명과 충돌 지점에 있던 사람 다수가 사망했다. 이 항공기는 아메리칸 항공 소속 보잉 767-223ER 기종으로, 원래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에서 이륙하여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 착륙할 예정이었던 아침 미국 대륙 횡단 항공편이었다.
이륙 15분 후, 테러범은 적어도 3명을 부상 입히고, 그중 1명 이상은 사망시켜 조종석으로 침입해 기장과 부기장을 제압했다. 이후 알카에다 멤버이자 상업 조종사 자격증을 가진 모하메드 아타가 항공기를 조종했다. 관제소에서는 승무원이 더 이상 응답하지 않자 비행기에 무슨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았다. 모하메드 아타가 기내에 전달한 말을 실수로 관제소에 보내 지상에서 비행기가 납치당했음을 인지했다. 기내에서는 항공 승무원 매들린 에이미 스위니와 베티 옹이 아메리칸 항공에 연락을 시도했고, 비행기 납치범에 대한 정보와 승객과 승무원이 부상을 입었음을 알렸다.
이 항공기는 EST 오전 8시 46분 40초에 세계 무역 센터의 북쪽 타워에 충돌했다. 뉴욕 길거리의 수많은 사람이 충돌 순간을 목격했으나, 정작 비디오로 녹화된 장면은 거의 없다.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인 쥘 노데가 충돌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찍은 유일한 사람이다. 비행기 납치가 확인되기 전까지 뉴스 미디어에서는 충돌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추측하고 속보를 내보냈다. 충돌로 인해 발생한 화재로 충돌 102분 후 북쪽 타워가 붕괴했고, 이로 인해 수백 명이 사망했다. 세계 무역 센터 붕괴 이후 부지 청소 및 복구 작업 중 작업자들이 11편의 사망자에서 나온 물품을 확인했으나 대부분의 신체 조각은 분별할 수 없었다.
출처: 위키백과 (CC BY-SA 4.0) · 위키백과 2026-09-30 기준
맥락 한눈에
2001년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대학교 설립(2006년), 퐁냐깨방 국립공원(2001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2003년)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는 바로 앞서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1989년), 뒤이어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2010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주요 사건은 현대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다.
3D 지구본에서 보기 → 나무위키위키백과같은 시기, 다른 지역에서는
-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대학교 설립 2006년
- 퐁냐깨방 국립공원 2001년
-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2003년
- 이라크 전쟁 2003년
- 레콘카보 다 바이아 연방 대학교 설립 2005년
- 2006년 동계 올림픽 2006년
- 2004년 하계 올림픽 2004년
- 교토 의정서 1997년
같은 지역의 앞뒤 사건
- 세계은행 1944년
- 국제 통화 기금 1945년
- 히피 1960년
- 핵확산방지조약 1968년
- 스톤월 항쟁 1969년
- 1980년 동계 올림픽 1980년
- 미국 국립생물공학정보센터 설립 1988년
-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1989년
- 9·11 테러 2001년
-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 2010년
-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 2013년
-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습격 2021년